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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회 칼 럼

 <입술의 파수꾼>           2025년 12월 7일  
나는 소시적에 참 숫기가 없었다.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를 두려워했고 민망해했다. 어쩌다 사람들 앞에 모습을 나타내도 말을 거의 안했다. 아니, 못했다. 그 덕분인지 말에 얽힌 화(설화)가 별로 없었다. 헌데 목사안수를 받은 이래로 입을 열어야하는 상황이 됐다. 사역 요소들이 설교, 기도, 심방, 교육, 전도, 상담, 훈련, 회의등의 주류 통로가 말이기 때문이다. 말을 하다보니 그에 따른 실수가 생겼다. 간혹 지혜롭지 못한 말, 부주의한 말, 시의적절치 못한 말을 함으로 듣는 이에게 오해 소지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부족하고 어색한 표현력으로 인해 설교 시에 시험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항상 느끼는 것인데 말을 잘하기는 그런대로 쉬워도 잘 말하기는 참 어려운듯 하다.
요즈음 내가 대하는 목사님들 대부분이 후배들이다. 그만큼 살아온 세월의 길이가 길어졌다. 후배 사역자들을 대할 때마다 더욱 마음에 새기는 결심이 있다. ‘말할 때 좀 더 생각하고 절제하고 삼가해서 말해야겠다’는 결심 말이다. 정말 언젠가는 목사님들 모임시 아무 말 안하고 듣기만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목사에게는 말이 사역의 필수 수단이니만큼 말을 하되 누구 앞에서나 할 말을 가려서 말하려 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대언자, 즉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전하는 말씀 전달자이다. 따라서 목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을 말해야 하고 자신의 말은 줄이고 또 줄여야 한다. 아무리 유려해도 자기 말이 너무 동원되면 종내는 말의 효과가 경감되고 공동체 내 갈등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말에는 한계가 있다. 말이 초기에는 떨어지는 물처럼 맑고 명쾌하게 들리고 꿀송이처럼 달콤하게 들려 듣는 이의 머리와 감성을 움직여도 그의 영혼과 마음 심연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그런데 주님 말씀은 다르다. 
주님 말씀에는 생기와 생명력, 능력과 지혜가 있어 영혼까지 살리고 감동시킨다. 설교자가 자신의 언어가 아닌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말할 때 말씀에 영적생명이 약동하고 영적향기가 퍼져 나온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것을 주시기까지 침묵해야 한다. 
때때로 침묵 속에서 크고 위대한 주님 말씀이 들려지기도 한다.
이 한주간도 자신의 말을 많이 하기 보다는 하나님 말씀이 기름처럼 공급되어 그 말씀에 몰입했으면 좋겠다. 우리 입술에 성령의 파수꾼이 굳건히 세워지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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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의 기다림>    2025년 11월 30일  
이번 주일(11월30일)부터 대림절(Advent)이 시작되었다. 대림절은 현시(現示)라는 뜻의 헬라어인 ‘에피파네이아’, 또는 현존(現存)을 일컫는 말인 ‘파루시아’의 번역이며, 도착(到着)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아드벤투스’에서 유래하였다. 최초의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vulgata)역에서는 대림절의 의미를 ‘그리스도께서 사람 가운데 오시는 절기’라고 해석하였다. 
본래 대림절의 기간은 4주에서 6주 정도로 동방과 서방교회가 서로 달랐는데 현재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는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로 지키고 있다.  기독교 교회력에서 대림절은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이다. 성탄절을 12월25일 로 정하고 이를 기다리는 대림절기가 시작된 것은 4세기부터였다. 그런데 성탄절이 제정된 가장 중요한 동기는 4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된 아리우스파의 출현에 있었다.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한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였다. 
아리우스에 따르면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로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성자는 성부로부터 지어졌으므로 당연히 성부보다 열등한 존재였다. 이런 학설을 주장하던 아리우스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교회는 ‘니케아 신경’을 제정하며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고히 하였다. 아리우스가 죽은 후에도 그를 추중하는 제자들이 늘어나자 교회는 다시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를 개최하고 이들을 재차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당시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교리 수호와 함께 성자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자연스럽게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고 강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적 전통으로 이어지면서 대림절의 전통이 확립 되었다.
대림절은 메시야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기간이다. 대림절은 초대교회 때부터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지켜졌다. 성도들은 아기 예수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며 그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림절에는 초대교회같은 기다림의 자세가 없다. 오히려 각종 행사들과 모임, 축제들과 선물, 여행과 만남등으로 소란스럽기기까지 하다. 이번 대림절은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확실히 믿고 그분을 앙망하면서 기도와 말씀묵상, 섬김에 더욱 몰입하시길 부탁드린다.

 목회 칼럼       (2025년 11월)
​<대림절의 기다림>    2025년 11월 30일  
이번 주일(11월30일)부터 대림절(Advent)이 시작되었다. 대림절은 현시(現示)라는 뜻의 헬라어인 ‘에피파네이아’, 또는 현존(現存)을 일컫는 말인 ‘파루시아’의 번역이며, 도착(到着)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아드벤투스’에서 유래하였다. 최초의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vulgata)역에서는 대림절의 의미를 ‘그리스도께서 사람 가운데 오시는 절기’라고 해석하였다. 
본래 대림절의 기간은 4주에서 6주 정도로 동방과 서방교회가 서로 달랐는데 현재 개신교와 가톨릭에서는 성탄절 전 4주간을 대림절로 지키고 있다.  기독교 교회력에서 대림절은 한 해를 시작하는 절기이다. 성탄절을 12월25일 로 정하고 이를 기다리는 대림절기가 시작된 것은 4세기부터였다. 그런데 성탄절이 제정된 가장 중요한 동기는 4세기에 이단으로 정죄된 아리우스파의 출현에 있었다.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 출신인 아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를 거부한채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였다. 
아리우스에 따르면 성자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로 태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성자는 성부로부터 지어졌으므로 당연히 성부보다 열등한 존재였다. 이런 학설을 주장하던 아리우스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교회는 ‘니케아 신경’을 제정하며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고히 하였다. 아리우스가 죽은 후에도 그를 추중하는 제자들이 늘어나자 교회는 다시 381년 콘스탄티노플 회의를 개최하고 이들을 재차 이단으로 정죄하였다. 당시 교회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의 교리 수호와 함께 성자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에 자연스럽게 세상의 구세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탄생일을 기념하고 강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예배적 전통으로 이어지면서 대림절의 전통이 확립 되었다.
대림절은 메시야의 탄생과 다시 오심을 경건하게 기다리는 기간이다. 대림절은 초대교회 때부터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로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지켜졌다. 성도들은 아기 예수로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면서 기도하고 성경을 묵상하며 그분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림절에는 초대교회같은 기다림의 자세가 없다. 오히려 각종 행사들과 모임, 축제들과 선물, 여행과 만남등으로 소란스럽기기까지 하다. 이번 대림절은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메시아이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확실히 믿고 그분을 앙망하면서 기도와 말씀묵상, 섬김에 더욱 몰입하시길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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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기의 차이>                    2025년 11월 23일
1620년 9월 6일, 영국의 청교도들이 “메이 플라워 호”를 타고 미국 동부를 향하여 출발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매스터호'라는 배를 타고 남미로 간 청교도들도 있었다. 북미로 간 자들이나 남미로 간 자들 모두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던 신앙인들이었고 또한 신앙의 자유가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허나 북미로 가던 “메이 플라워호”와 남미로 떠나가던 “매스터 호”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기의 차이였다. 물론 남미로 간 사람들에게도 신앙적인 동기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지닌 더욱 큰 동기는 남미 대륙에 매장되어 있던 황금을 찾는 것이었다.. 당시 남미에서 엄청난 양의 금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그들은 새로운 대륙에 가서 새로운 기회를 잡아 부자가 되겠다는 동기 때문에 “매스터 호”를 탔던 것이다. 반면에 북미로 갔던 사람들은 금과 같은 물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음껏 섬기기 위해서 정든 고향과 삶의 터전을 떠났다. 그들은 영국 국교도들의 핍박으로 인해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자, 자유롭게 찬양을 부르고 자유롭게 기도를 하고 자유롭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할 수 있는 진정한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메이 플라워 호”를 탔던 것이다.
이렇듯 동일하게 신앙생활을 하던 두 그룹이 각기 다른 동기로 각기 다른 지역을 향해 떠나갔던 것이다. 북미 대륙을 향해 떠난 청교도들은 하나님 한 분만을 찾아 그곳에 와서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며 예배당 부터 먼저 지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집을 지음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정착 초기에 믿음의 동료들이 하나, 둘 죽어감에도 좌절치 않고 기어코 예배당을 완공했으며, 1년 동안 농사를 하고 추수한 농작물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추수감사주일을 지켰다. 신앙적인 동기 때문에 북미로 간 사람들은 신앙의 르네상스를 경험하였을 뿐 아니라 이후 물질의 풍성함도 누렸다. 그들이 뿌린 감사와 희생의 씨로 인해 그들의 후손은 오늘의 미국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다. 반면에 황금을 좇아 남미로 간 사람들은 신앙을 잊어버리고 그들이 그렇게 원했던 돈도 벌지 못했다. 현재 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인플레이션과 반목되는 경제 불안으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언젠가 남미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의 대통령을 만나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조상들은 하나님(God)을 찾아서 신대륙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찾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 황금(Gold)도 선물로 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황금을 찾아서 이 땅으로 건너와서 황금도 찾지 못하고 하나님도 잃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신앙의 조상들을 둔 당신들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하나님과 재물,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인기, 하나님과 명예들 중에서 먼저 무엇을 택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백성들인 우리는 오직 하나님을 선택해야만 한다.

 
<불평말고 감사하자>                    2025년 11월 16일
여름철 한 낮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 그 태양을 향해 원망을 잔뜩하고 있던 풀잎에게 스산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풀잎은 자신을 시원케 해주는 비를 바라보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러자 비가 손을 내저으며 겸연쩍게 말했다. "내가 멋대로 내려온 게 아냐 세찬 바람 때문에 밀려 내려 왔으니까 인사를 하려거든 바람한테나 하게나" 비가 하는 말이 옳다고 여겨져 풀잎은 이번에는 바람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그런데 바람도 손을 내저었다. "내가 마음대로 불어 젖힌 게 아닐세 구름이 수분을 실어다 주었기에 그 덕분에 비가 온거지, 그러니 고맙다는 말을 하려거든 구름한테 하게나" 풀잎이 생각해보니 바람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구름에게도 정중히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구름이 "내가 어디 내 마음대로 수분을 운반할수 있겠는가 하늘중심에 있는 태양이 계속해서 내리쬐는 덕분에 수분을 흡수할 수 있었지, 그래서 우리가 비를 만든 거야 정말 인사하고 싶거든 태양에게 하게나” 그런데 구름의 말을 듣던 풀잎은 그만 풀이 죽고 말았다. 자신이 원망하던 태양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하다니..그런데 자신에게 향했던 모두의 말들이 전부 옳았기에 풀잎은 용기를 내어 태양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자 태양이 이렇게 말했다 .
"나도 내 마음대로 빛과 열을 내리 쪼이게 했던 것이 아닐세. 우주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힘으로 세상만사가 다 그렇게 돌아가는 법이니 감사를 올리려거든 하나님께 올리게나"
우리들은 때때로 위의 풀잎처럼 불평, 원망을 토로하곤 한다. 특히 어려운 상황이나 곤란한 사람을 대할 때는 자신도 모르게 불평이 나온다. 불평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직접적인 위반이며 반항이다. 불평은 자신의 삶에 해를 끼칠 뿐 아니라 하나님의 가치기준과 계획,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방해하기도 한다. 또 불평은 하나님의 사랑하심, 공급하심, 보호하심을 의심하게 만든다. 불평은 하나님과의 관계와 불평 대상자와의 관계를 불화하게끔 만든다. 불평은 믿음 없는 가운데 행해지는 일로서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의 잠재적 능력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불평은 하나님께서 어떠한 환경이라도 다스리실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게끔 만든다. 불평을 극복하는 비결은 감사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고 있는 험하고 캄캄한 길에 조그마한 빛이 비추어도 그것을 하나님의 주시는 자비로우신 빛이라 여기면서 감사함으로 진행하면 주님이 허락하시는 행복과 기쁨이 몰려온다.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하는 습관을 버리고 얼굴을 피며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 항상 우리를 지키시며 하늘은혜와 사랑과 복을 넘치도록 주시는 하나님께 존귀영광과 감사를 드리자.

​ <예배의 바다>                   2025년 11월 9일
지금도 그런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여름철 무더울 때 바닷가에는 피서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어느 여름 날에는 부산 해운대 바다에 백만 인파가 모여들어 피서를 즐겼다는 방송이 있었다. 여의도 복음집회 때에 백만성도들이 참석해 열심히 찬송부르고 말씀을 들었다는 소식은 여러번 들었는데 바닷가에도 그토록 큰 규모의 사람들이 모였들었다는 보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곤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제대로 피서 휴식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구심도 살짝 들었다. 그런데 바닷가에 간 사람들 중에는 실제 바닷물에 들어간 사람도 있으려니와 그렇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그냥 모래밭 밖에서 관망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모래 밭에서 즐기는 사람들, 또 바닷 물에 발목만 담그는 사람들, 무릎까지 담그는 사람들, 더 들어가 허리까지 담그는 사람들, 목까지 담그는 사람들, 그리고 머리까지 
물 속에 담그고 헤엄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바다에 즐기려 와서도 모두가 다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게 아니라 아예 바닷물을 멀리하는 사람도 분명있다. 사실 나역시 바다에 가면 발목과 허리 정도까지만 물에 담그곤 한다.
우리 신앙도 그런 모습이다. 믿음생활과 교회생활을 즐기려면 머리까지 완전히 담가야 한다. 그래야만 제대로된 신앙생활이 가능하다. 성도들은 주일날에 공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나온다. 헌데 예배드리는 모습들은 실로 다양하다. 예배에 쏱는 마음의 정성지수가 다양하고 예배드리는 모습도 다양하다. 물론 하나님 이버지께서는 우리가 어떤 모습과 형태로 예배드리던 교회 뜰을 밟은 것만으로도 우리를 받아주신다. 헌데 하나님은 우리가 온 몸을 바닷물에 다 담그듯이 그렇게 당신께 예배드리는 것을 바라신다. 우리가 정성과 마음을 예배 속에 온전히 빠져들 때 은혜와 복이 더욱 풍성히 임한다. 예배시간을 엄수하며 예배 중 흔들림없이 한 자리를 지키며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를 보시면서 주님은 크게 기뻐하신다. 우리가 입을 크게 열고 찬송을 힘있게 부르며 기도에 목소리를 다하며, 말씀듣는 것에 마음을 집중할 때, 또 축복이 임하길 소망하며 축도를 받을 때 그 예배에 신령한 복이 임하는 역사가 일어난다.
성공하는 자는 하는 일에 초 집중하는 자이다. 바다를 제대로 즐기려면 바닷물에 온 몸을 담그고 즐겨야 한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려면 하나님께 자신을 온통 담가야 한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즐기려면 무엇보다 예배에 영혼과 마음을 전부 담가야 한다. 오늘 거룩한 주일, 예배의 날이다. 우리 모두 예배의 바다에 빠져 예배를 제대로 드리시며 제대로 즐기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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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기도>                  2025년 11월 2일                     하이네 / 시인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쓸쓸함으로 그려내는 가을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이게 하소서
이 가을이 종일토록
내 마음 눈 시린 하늘 저 멀리
가벼운 새털구름 한 자락 고이 걸어두는 
아름다운 가을이게 하소서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 향기 따라 
가을을 실어옴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의 흐느낌 속에서도
이 가을이 내게 쓸쓸함이지 않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 하늘 뭉게구름 피어오르며
청명한 물길 따라 흐를 때
나 혼자 저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봄에
이 가을이 더 이상 외로움을 그려내는 
가을이지 않게 하소서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내 고운님을 향한 나만의 곱고 고운 
그리움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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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 칼럼       (2025년 10월)
 <여분의 사람>                 2025년 10월 26일
내가 가진 것을 전부 써 버리지 않고, 여분의 것을 마지막까지 남겨둘 줄 아는 사람.
말을 남겨두고 그리움을 남겨두고 사랑을 남겨두고 정을 남겨두고 물질을 남겨두고 건강을 남겨두면서 내일을 바라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말을 다 해버리면 다음에는 공허함이 찾아 오고 마음을 한번에 다 주어 버리면 이어 허탈감이 밀려옵니다.
사랑을 한번에 다해버리면 다음에는 아픔이 생겨 상처받게 되고 가진 것을 다 써버리면 불안해지고 그리움이 너무 깊으면 가슴앓이가 생기고 젊음과 건강을 유혹 속에 다 써 버리면 나중에 많이 후회하게 됩니다.
누군가는 불타는 사랑이 아름답다고 말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고 오래 참고 인내하면서 매일매일 더욱 사랑해 가는 모습이 더 아름답습니다.
마음의 여분도 또 다른 이를 위하여 남겨두는 것이 좋고 기쁨도 슬픔도 전부 드러내지 말고 누군가를 위해 얼마라도 속에 간직해 두면 더 아름다울 것입니다.
기다림으로 만나는 사람이 진정 반가운 사람이고 오래 가는 사랑이 귀하고 깊은 사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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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입니다!>                2025년 10월 19일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유일한 주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로마서 1:1), 또는 ‘하나님의 종’(디도서 1:1)이라 말했다. 일반적으로 종이란 노비나 천한 신분을 가리키는 말로 주인을 위하여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다. 예전시대에 종은 자유인이 아니었다. 종에게는 자신의 소유및 권리가 없었다. 목숨마저 주인 소유였다. 종은 자유및 창의적 삶도 없었다. 종의 모든 것은 주인에게 속했다. 그런데 바울을 위시 모든 기독자들이 예수님의 종이라 말할 때, 그것은 종에게 삶의 권리가 절대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성경에서 종이 된다는 것은 그에게 인생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자유롭게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권리가 있음에도 예수님을 위해 또한 이웃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내려 놓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종은 누군가의 강요때문이 아닌, 또는 어쩔수 없는 강압적 환경때문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때문에 자신을 내려놓고 포기한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은 종과 같은 존재가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모든 권리를 자발적으로 포기 하셨다. 예수님께서 소유하셨던 권리를 생각해 보시라.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창조주셨다. 빌립보서 2:6에 그분을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 요한복음 1:2에,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신 분’으로 기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늘 영광과 보좌를 포기하시고 미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는 길을 택하셨다. 또한 자신의 생애를 왕으로 군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하는 일에 바치셨다. 주님은 자신의 권리로 왕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지만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셨다.”(빌립보서 2:7-8).
예수님은 모든 기독자들이 당신의 가르침을 본받길 바라신다. 마가복음 9:35에,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했다. 집, 일터, 사무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고 남을 먼저 섬겨야할 책무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우리는 주님의 종이며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의 종이기도 하다. 다른 이의 섬김을 기다리는 대신,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셨던 것처럼 자신이 먼저 종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에 감사하여 남을 따뜻하게 섬기시길 바란다.

 <사막을 건너는 방법들>               2025년 10월 12일
스티브 도나휴(Steve Donahue)가 쓴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원제: Shifting Sands)이란 책이 있다. 스티브는 순탄치 않은 생을 살아오면서 경험한 것을 토대로 사막과 같은 인생 여정을 슬기롭게 건널 방법을 제시한다. 그는 “사막과 인생은 닮은 꼴이다. 끝은 가물가물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가 신기루를 좇기도 한다. 사막을 건너는 동안 언제 건너편에 다다를지 알 수가 없다.”라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법은 이렇다.
첫째, 지도를 따라가지 말고 나침반을 따라가라. 사막지형은 거센 모래바람으로 인해서 어제와 오늘의 지형이 변하기에 표면의 지도보다는 ‘마음 속의 나침반’을 따라야 한다.
둘째,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쉬어가라. 많은 이들이 오아시스를 만나도 쉬지않고 정상을 향해 달려간다..인생의 오아시스를 만났어도 쉬지 않으면 결국 기진하여 쓰러지고 만다.
셋째, 모래 속에 갇히면 타이어에서 바람을 빼라. 차가 모래에 빠지면 바람을 빼고 밀면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허나 가속페달을 밟고 급하게 빠져나오려 한다면 더 깊이 빠지게 된다. 삶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겸허하게 한 발 뒤로 물러나 바람을 빼는 여유가 필요하다.
넷째, 더불어 여행하라. 사막에서 혼자 여행하는 것은 항시 위험하다. 누구에게나 인생여정에는 동행이 필요하다. 그래야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다섯째, 캠프파이어에서 한걸음 멀리하라. 따스하고 배부른 안전지대에 머무는 한 절대 성장이 없다. 사막의 깜깜한 어둠 속으로 진행해야 생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만큼 성장해 간다.
여섯째, 허상의 국경에서 멈추지 말라. 현재의 세계에서 눈을 돌려 또 다른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다. 세상은 넓고 넓다. 신비한 세상 속을 걸어가면서 그 진행을 방해하고 가로막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런 여섯 가지의 원리가 적용된다. 이 세상은 사막같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신앙의 나침반, 즉 말씀이 있어야 한다. 영적 재충전을 위해서 때로 쉼이 필요하다. 자신의 무능을 바라보면서 겸손으로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믿음의 지체들과 함께 함도 필요하다. 또한 안전지대에만 머물지 말고 신앙의 모험을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떨치고 담대하게 전진해야 한다. 사막같은 인생이기에 주님의 손길이 더욱 우리를 안위하실 것이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            2025년 10월 5일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과 절정의 순간을 항상 맛보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는 홀로 고독한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한 것처럼 보여지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며 다른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수 있는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삶에 고통이 없어야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이 통과해야 할 길임을 알고 그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지체들간에 갈등이 있음을 갈등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잠히 기다리며 두려움없이 하나님의 손길에 갈등을 맡기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완전한 기쁨을 맛보며, 완전한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실망을 분노로 표현하지 않고 그날이 오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신음하며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절대로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때로 남보다 더 강한 유혹을 느끼며 그 유혹에 빠지기도 하지만 마음 속 깊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올줄 아는 사람입니다.
영혼이 건강한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관계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활짝 마음의 문을 열고 날마다 새로워지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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